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레이트풀 데드 (문단 편집) == 상세 == 20세기를 풍미한 [[미국]]의 전설적인 [[록 음악|록]] 밴드. 데뷔 초기인 60년대 중반과 후반에는 [[사이키델릭 록]] 음악을 했다. 이 때 블루스나 포크록 성향도 조금 보였다. 그러다가 [[히피]] 이상이 몰락한 70년대 부터는 미국 전통 음악인 [[블루스]]를 비롯한 [[컨트리 뮤직|컨트리]]/포크 록으로 전향하여 꾸준한 그리고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냈다. 1995년 리더였던 제리 가르시아가 사망하면서 해체되었다. 나머지 멤버들은 그레이트풀을 뗀 데드로 활약했다. 워낙 관련 밴드가 많아서 여기 다 적는건 불가능하고 데드 해체 후 2014년까지 Further로 이어졌다가 2015년 원년 멤버 네 명에다 [[존 메이어]]와 다른 연주자들이 다시 뭉친 데드 앤 컴퍼니가 후계를 잇고 있는 중이다. 그레이트풀 데드는 폭넓은 레퍼토리와 이를 즉흥 연주로 그날그날마다 다르고 길게 연주하는 뛰어난 라이브 공연으로 유명했다.통상 3시간 안팎의 긴 공연에서 한 곡을 30분 넘게 즉흥연주만으로 늘리기도 하는 그들의 특이한 공연 방식이 그들의 강점이었다. 매 공연마다 각각 색다른 맛을 주는 이러한 라이브 공연의 매력에 이끌려 팬들은 항상 공연장을 찾았고, 공연을 녹음 한 것을 서로 공유하면서 커뮤니티를 유지했다. 이러한 팬들은 '데드헤드(Deadhead)라고 불렸는데, 몇몇 열성적인 데드헤드들은 제대로된 직장이나 안정적인 삶도 그냥 던져버리고 투어 내내 밴드를 따라다니면서 모든 공연을 관람하는 것을 목적으로 둘 정도였다. 이런 강력한 팬덤 덕분에 60년대에 결성된 락 밴드로선 희귀하게도 리더 제리 가르시아의 사망 이전까지 30년 가까이 커다란 인기를 누렸다. 1995년 제리 가르시아가 사망하고 해체하기 직전인 90년대까지도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List_of_highest-grossing_concert_tours#1990s|1993년과 1991년에 미국 내에서 가장 공연 수익을 많이 올린 밴드로 선정될 정도였다.]] 이들은 독자적인 네트워크로 서로 우편으로 교환하고 주고 받으면서 소통했고, 후에 이러한 문화가 인터넷 혁명과 연결되어 팬덤 문화를 [[사이버스페이스]]에 접목시킨 최초의 사례로 남게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. 게다가 [[티모시 리어리]] 등 히피 세대의 우상들이 중년이 된 이후 인터넷과 컴퓨터에 친화적으로 대했던 것도 한 몫했다. 리어리는 심지어 PC를 새로운 LSD라고 지칭했을 정도이다. 데드헤드 중에 유명인들이 많다. [[토니 블레어]], [[키스 해링]], [[조지 R.R. 마틴]], [[클로에 세비니]], [[빌 클린턴]], [[앨 고어]], [[티피 고어]], [[파이살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]], [[낸시 펠로시]], [[블랙 플래그]], [[제인스 어딕션]], [[엘비스 코스텔로]]가 있다. 심지어는 '''이 밴드의 이름을 딴 [[곤충]]'''도 있다! Dicrotendipes thanatogratus라는 곤충으로, 1987년에 존 에플러가 명명. 속명인 thanatogratus가 이 밴드의 이름을 라틴어식으로 쓴 것이다. 역사상 최고의 연주력을 가진 밴드들 중 하나로, 스튜디오 음악보다는 라이브가 중시되는 것으로 알려진 밴드이다. 1977년 코넬 대학에서 한 공연은 미 의회도서관에서 선정한 [[National Recording Registry]]에 등재되었다. 라이브를 수천 번 넘게 했음에도 같은 곡을 단 한 번도 똑같이 연주한 적이 없다는 소문이 돌 만큼 즉흥 연주에 큰 비중을 두었다. 60년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[[마일스 데이비스]]나 [[콜트레인]]의 재즈와 블루스 등의 영향을 받고 수십 분짜리 즉흥 연주를 하는 밴드들이 출연하기 시작했는데, 그 중 선두 주자가 그레이트풀 데드였고 그들은 다른 사이키델릭 록 밴드와 달리 30년이나 코어 멤버들이 변하지 않은 채로 활동하게 되었다. 모든 연주자들의 기량이 출중하지 않으면 지루해지기 쉬운 10분이 넘어가는 잼 연주도 너끈히 해내는 모습은 이후의 록 계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었다. 특히 리드 기타리스트 제리 가르시아는 재즈 연주자들에 버금가는 즉흥 연주의 달인으로 유명했다. 가르시아의 기타리스트로서의 우상은 재즈 기타리스트인 [[장고 라인하르트]]였다. 둘 모두 후천적인 손의 장애를 극복하고(가르시아의 경우 오른손 중지를 어린 시절에 잃어 컨트리 연주에 꼭 필요한 핑거 피킹에 어려움이 있었다.)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. 미국 록밴드 좋아하는 [[롤링스톤]]에서 뽑은 [[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]]에서 '''제리 가르시아'''가 '''46'''등, 롤링 스톤 선정 100대 베이시스트에서 '''필 레시'''가 11등, 롤링 스톤 선정 100대 드러머에서 '''미키 하트'''와 '''빌 크로이츠만'''이 34등을 했다. 또한 스튜디오 반으로는 Workingman's Dead, [[American Beauty(앨범)|American Beauty]]가 명반으로 꼽히는 편이다 공식 유튜브 채널에 현재도 과거 공연 영상이 자주 올라오고 인스타그램 활동도 --매우--열심히 이뤄진다 [[코트니 러브]]의 아버지가 이 밴드 매니저였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